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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단체와함께~

장길자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회장님의 1995년~2010년간 걸어온 길

장길자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회장님의   1995년~2010년간  걸어온 길

 

 

장길자회장님의 복지활동

 

 

역사의 파란을 겪어낸 ‘한국인’의 이야기는 장길자 명예회장의 삶을

단편적으로나마 그려냅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대한민국 GNP(국민총생산)는

1인당 67달러에 불과했습니다.

뿌리까지 소실된 나라의 살림살이가 ‘한강의 기적’을 거쳐

구색을 갖추기까지는 반세기 남짓의 짧고도 험준한 시간이 들었습니다.

우리집 이웃집 할 것 없이 하루 한 끼를 걱정해야 했던 시절,

장길자 회장은 된장찌개 한 그릇이라도 나누며

사람들과 ‘함께’했습니다.

어머니가 가족들의 식사를 챙기듯 일상적이면서도

포근하게 시작된 나눔과 봉사의 손길은

연탄가스에 중독돼 생명이 위독한 이웃집 노부부를 살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가족을 돌보듯 지극한 사랑은

오늘날까지도 한결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995~2000

장길자 회장 “내 가족의 일처럼”

 

  •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무료급식봉사

  • 7개국 복지소외이웃 의료∙생계비 지원

  • 제1회 새생명 사랑의 콘서트 개최

전쟁으로 얼룩진 과거를 딛고

점차 산업 발전과 경제부흥에 박차를 가하며

맞이한 90년대. 1995년에 이르자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1만 달러를 돌파할 만큼

대한민국의 먹고사는 수준은 나아졌습니다.

그러나 한편에는 맹목적 성장의 어두움도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부실설계로 인한 인재(人災)의 대명사로 거론되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그해 6월 발생했습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최고급 백화점이 주저앉았다는 사실에

전 국민이 경악했습니다.

502명이 죽고 937명이 부상당한 대형 참사였습니다.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장길자 명예회장과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두 팔 걷어 나른 것은 ‘어머니 사랑’을 담은 따뜻한 집밥이었습니다.

봉사자들은 지하에 들어간 구조대원들을 일일이 불러 모아

그들의 끼니를 챙겼습니다.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생명을 구하느라 식사 때도 잊고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던 구조대원들은

장길자 명예회장과 봉사자들이 마련한 국밥 한 그릇을 비우며

구조에 더욱 최선을 다할 수 있었습니다.

이웃을 가족처럼 여기며 그들의 슬픔을 보듬어가던 장길자

명예회장에게는 바다 건너 이웃나라 사람들의 형편도

내 가족의 일이었습니다.

필리핀, 파키스탄, 가봉 등 7개국의 복지소외이웃들에게

의료비와 생계비를 지원하며 ‘어머니 사랑’을 건넸습니다.

2000년, 밀레니엄 시대가 개막되었을 때

장길자 회장은 만국 공통어 ‘음악’으로 지구촌 가족들의 시린 삶을 녹이는

화합과 나눔의 장을 열었습니다.

20년 후 국제위러브유(이하 위러브유)의 대표 복지행사가 될 ‘새생명 사랑의 콘서트’의

첫 무대였습니다.

 

2001~2005

 

장길자 회장의 ‘첫 회’의 의미

 

  • (사)새생명복지회 설립

  • 제1회 새생명 사랑 가족걷기대회 개최

  • 대한민국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무료급식봉사

  • 대한민국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서포터즈 활동 및 자원봉사

  • 제1회 어머니 사랑의 김장 나누기 개최

  • 장길자 회장 체육훈장 맹호장 수훈

  • 제1회 헌혈하나둘운동 개최

이 시기 장길자 회장은

사단법인 새생명복지회를 설립하고 복지활동을 본격화했습니다.

이후 매년 4~5월이 되면 가족 단위 회원들이 산책로를 걸으며

지구촌 가족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새생명 사랑 가족걷기대회’와

국내 다문화가정, 홀몸어르신가정 등 복지소외이웃들의 겨울 양식인

김장김치를 손수 담가 지원하는 ‘어머니 사랑의 김장 나누기’,

그리고 헌혈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헌혈하나둘운동

등 굵직한 복지행사의 ‘첫 회’를 열었습니다.

보다 많은 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범세계적 복지행보의 ‘시작’이었습니다.

그사이 2003년, 대구에서는 가슴 아픈 참사가 있었습니다.

지하철 화재로 사망자 192명을 포함, 340여 명의 무고한 사상자가 발생한 것입니다.

장길자 회장과 회원들은

곧장 유가족들의 임시 거처인 대구시민회관 앞에 천막을 치고

무료급식봉사에 나서,

사랑하는 가족과 소중한 이들을 잃어버린 이웃들과 55일간 함께하며

들의 마음을 위로했습니다.

같은 해 8월에는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가 개막했습니다.

장길자 명예회장과 전국 각지 회원들은

국제경기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서포터즈 활동과 자원봉사에 힘을 쏟았습니다.

이는 1년 후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 수훈으로 이어졌습니다.

 

2006~2010

아프리카 오지에 물줄기를 내다

 

  • (사)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로 명칭 변경

  • 페루 지진 피해학교 임시 교실 15채 건설

  • 전 세계 클린월드운동 발대식 개최

  • 제1호, 제2호 물펌프 설치-가나 브레맨코코소 마을

장길자 회장은

사단법인 새생명복지회의 명칭을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로 변경하고

‘어머니의 사랑을 온 세상에’라는 슬로건 아래

다채로운 활동을 전개해나갔습니다.

이 시기에 손꼽히는 행보는 2009년 아프리카 가나의

브레맨코코소 마을에 ‘사랑의 물펌프’ 제1호와 제2호를 설치한 일입니다.

이후 장길자 명예회장은

위러브유 회원들과 콩고, 케냐, 베냉, 캄보디아,

라오스, 방글라데시, 인도 등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물 부족 국가에 지속적으로 식수 지원 사업을 펼쳐

2019년까지 총 29대의 물펌프를 설치합니다.

브레맨코코소 마을 주민들은

당시 오염된 냇물을 식수로 사용하다 보니

기니충에 감염되는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위러브유에서는 공사 기금 전액을 지원,

지하수를 개발하여 펌프를 추가로 설치했습니다.

수맥탐사 후 지하수 시추작업 시작 두어 달 만에

새로 설치된 두 대의 펌프가 물줄기를 뿜어내자

주민들은 환호하며 기뻐했습니다.

 

그에 앞서 장길자 회장은 2007년 지진 피해를 입은

페루 친차 ‘산타아나’ 학교에 현지 위러브유 회원들을 통해

임시 교실 15채를 지어주었습니다.

이듬해에는 건강한 지구, 지속 가능한 환경을 이뤄가고자

도심, 산, 강, 바다를 정화하는 ‘전 세계 클린월드운동’ 발대식을

한국에서 개최해 세계 규모의 환경보호활동에 나섰습니다.